아이를 키우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 ― 포포포 매거진 '육아 공감'
엄마의 잠재력에 주목하는 포포포 매거진이 똑닥을 찾아왔어요. 첫 번째 편지로, 오늘은 “아이를 키우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글을 전해요. 육아가 ‘부모의 개인적인 문제’로만 여겨지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마주한 벽은 무엇일까요? 부모가 육아를 할 수 있다면 ― 에스텔의 프라하 육아일기 한국의 아빠는 다 어디에 있었을까? 모조리 여자들만 남았다. 쇼핑몰에도 문화센터에도, 키즈 카페에도. 우리 아이들의 아빠는 줄곧 회사에 있었다. 남편은 6시에 출근하고 집에는 9시나 10시가 되어서 들어왔고, 아기는 7시에 일어나 8시에 잠이 들었다. 남편은 주중에는 잠든 아기만 보았고, 주말에서야 둘은 깨어있는 상태로 만날 수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정말 힘들다. 그러니 한번 육아를 해보기만 하면, 호기로웠던 다자녀의 꿈을 접고, 외동으로 마감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용감했던지, 둘째도 낳아버렸다. 이왕 망한 인생! 확실히 망해보자! 대신 쪽수를 하나라도 더 늘려보자! 호기로운 체념선언에도 육아는 쉽지 않았다. 코로나 기간에는 불행 중 다행으로 남편이 7시 즈음에 들어와 둘째를 겨우 키웠다. 내가 둘이 되지 않는 이상 첫째를 토닥이면서 둘째를 안아 재울 순 없었다. 그래서 남편이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셋 다 엉엉 우는밤도 있었다. 나는 정말 눈물이 났다. 아이들이 잠이 들지 못해 엉엉 우는 때이면 어쩔 도리 없이 같이 울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일어나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영유아 육아 뫼비우스의 띠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냈다. 계절이 바뀌고 아이들이 아프면 긴긴 소아과로 가는 여정이 시작된다. 주차하고 아이 하나를 아기 띠하고 하나는 유아차에 태워서 대기표를 뽑고 진료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약국까지 걸어가 약을 타고 아이들 차에 태워 등원을 시키고, 홀로 아이 둘을 데리고 병원 가는 날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긴장한 채로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초점 없는 눈으로 줄곧 앞에서 아이들을 안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아이를 낳고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돈 문제’ 였다. 어디 세상살이 돈 문제가 아닌 일이 있겠냐 만은. 한 사람이 경제활동을 하고, 한 사람은 육아에 매진해야지만 가능한 상황에서 돈을 벌던 사람이 돈을 못 버는 사람이 되는 일은 굉장한 상실감으로 다가왔다. 내가 사회에서 아이 보는 일 말고는 할 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박탈감이 수시로 찾아왔었다. 아이 간식을 살 때는 유기농으로 척척 사면서, 나 자신에게는 아이스크림, 커피 한 잔도 인색해질 때 자주 우울했다. 아이 키우면서 어느 때보다 가장 많은 노동을 소화하지만, 벌이가 없다는 것은 주눅드는 일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나는 카드를 긁을 자격이 있다고 외쳐봤다. 그러나 남편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것도 나였고, 수시로 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사야 하는 것도 나였다. 누구도 나에게 육아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않았으나, 내가 아이를 전적으로 돌보기 때문에 남편에게 맞벌이하던 때 이상의 것들을 해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 그리고 못다 한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 행복한 가정을 일구고 싶은 마음,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은 마음. 그럼에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나의 삶이 계속해서 충돌했다. 그 순간에도 남편은 일터에 있었고, 나는 아이들과 집안에 있었다.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이전의 삶을 다시는 누리지 못하고 더 가치 있는 내일을 위해 미래를 도모하는 일이나 이 모든 것을 홀로 감당해내는것은 정서적으로 많은 부딪힘을 주었었다. 이 부분은 모든 초보 엄마·아빠가 겪는 비극이라 생각한다. 체코에 살면서 몹시 신기한 광경은 육아하는 아빠들을 자주 보는 것이다. 일명 라떼파파가 실제로 있다. 아기 띠를 매거나, 유모차를 끌고 있거나, 한쪽은 걸음마둥이를 안아 들고 한 손은 예닐곱 살 즈음 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있다. 아빠가 아이들 픽업하고 아이 둘을 데리고 다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고, 주말에 공원에서 영유아 둘과 시간을 보내는 아빠도 봤다. 병원에서도, 슈퍼에서도, 공원에서도, 하굣길에도, 대부분의 육아 현장에 아빠가 있다. 둘째의 유치원에도 엄마·아빠가 번갈아 가며 등원과 하원을 하는 경우를 자주 봤고, 첫째가 다니는 국제학교에도 등 하원을 도맡아 하는 아빠들이 꽤 있는 편이다. 한국에서는 몹시 생경한 광경인데, 여기서는 자주 볼 수 있다. 아빠가 있는 삶이라니 여기 엄마들의 삶도 고단하겠지만, 그래도 아이를 키우는 것이 무섭거나 겁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홀로 육아 시간을 견디면서 가장힘들었던 것은 내가 부모로서 돌파해 나가야 하는 순간에도 혼자였던 것이었다. 유럽사람들 사이에서도 체코는 워라밸이 좋은 문화를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체코인 아빠에겐 일과 가정과 저녁이 있다. 퇴근 시간인 4시 즈음부터 차가막히기 시작하고, 5시까지 퇴근차량으로 도로는 복잡하다. 그리고 그에 맞춰 체코 학교는 8시에 시작해서 4시쯤에 끝난다. 퇴근한 엄마 아빠는 아이들과 장을 보고,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퀄리티 타임이라는 것을 보낸다. 퀄리티 타임은 가족들과 어떤 제약이나 방해 없이 교감하고 사랑하고 지지하는 시간이다. 유럽의 가정은 대부분 저녁 식사 이후에 아이들과 퀄리티 타임을 가진다. 체코의 육아정책은 꽤 실질적인 편이다. 체코는1990년에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전환되면서 출생률이 1.1퍼센트 대로 떨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부모 용돈이라는 제도가 도입되었으며, 현재는 출산지원금과는 별도로 4세 미만의 아이를 양육하는 가정에 지급되고 있다. 체코는 육아휴직 수당을 아이 1명당 총 23주까지 최대 35만 코루나(한화 2000만원 상당), 쌍둥이는 최대 45만 코루나(한화 26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지출 추적을 하지 않고 현금성 지원으로 아이를 양육하는 가정에 용돈을 준다는 개념의 정책이다. 체코에서는 만 4세 이하의 영유아를 위한 보육기관이 무척 비싸고, 드물어서 대부분 부모가 직접 양육하거나 베이비시터를 고용하거나, 조부모의 도움을 받는다. 어떤 방법을 쓰던, 아이의 부모가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있는 정도의 현금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그래서 부모들은 이 용돈으로 조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거나, 청소용역을 쓰거나, 생활비로 쓰거나 본인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직접 결정한다. 가능한 부모가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준다는 점에서 혜택이었고, 부모가 아이를 육아할 환경을 직접 설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용적인 정책이라고 생각했다. 실제 2024년 기준 체코의 출생률은 1.7퍼센트로 한국의 두 배 정도 된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더 낳도록 체코 정부는 적극 장려하고 있다. 게다가 아빠들의 육아휴직도 장려되는 편이라 체코인 친구도 자신의 친언니가 1년 휴직을 하고 언니의 남편이 1년 휴직을 하고 나머지 1~2년은 조부모님이 육아를 전담하고, 만 4세 이후에 기관에 간다고 한다. 이 부분은 아이가 태어나 건강한 어린이로 자라기 위한 최초 3년의 애착을 보장해주는 셈이기도하다. 나는 이것이 아동 인권과도 유관하다고 생각한다. 체코에서는 대부분 둘을 낳는다. 맞벌이 가정은 외동을 낳지만, 어떤 가정은 둘, 셋까지도 낳는다. 그리고 결혼 자체가 인생의 큰 허들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대부분은 한 두 사람과 연애하고 이십 대 중후반에 결혼이나 동거의 형식으로 함께 살아간다. 그들은 결혼은 꼭 하지 않아도 아이는 낳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런 생각은 요즘 MZ이라고 부르는 젊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어느 유럽 나라가 그렇듯, 체코는 아직도 공동체가 깨어지지 않은 나라다. 아무래도 대부분의 체코인이 가정이 주는 안정감을 느끼며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에게도 가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게다가 대부분 독립적이고 엄격한 가정 교육과 사회에서 만나는 어른들이 아이의 훈육을 분담하기 때문에 부모가 가지는 육아의 부담은 덜 한편이다. 육아 방식에 대해서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전통적인 육아 스타일을 따르는 편이라 부모가 가지는 피로도가 덜한 것도 특징이다. 체코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몸으로 느끼며 배우는 문화와 정책의 차이는 내게 새로운 관점과 시선을 선물해 준다. 한국에서 한걸음 떨어져 현상을 바라보게 하고, 본질적인 행복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시간이 된다. 그래서 조금 더 다른 시야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도 감사한 지점이다. 체코의 정책이 모두 한국에 시사점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과 체코는 역사도, 문화도, 경제적 기반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체코의 출생 정책의 큰 두 줄기는 아빠의 육아 참여와 영유아기의 부모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다. 이렇게 엄마·아빠의 삶이 영위된다. 한국에서도 영유아기의 육아가 끝나면 아이는 공교육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엄마·아빠는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그 과정까지 한 사람의 일상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출생과 육아가 한 인간의 경력이되고, 삶이 계속될 수 있도록 말이다. 출생률이라는 계량적인 접근이 아니라 조금 더 인본주의적인 관점에서 개인의 행복과 주체적인 존재임을 인정하는 방향의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기를 바란다. > 똑디분들은 어떤 순간에 ‘육아가 버겁다’고 느끼시나요?이 글을 읽고 떠오른 생각, 비슷한 경험을 함께 나눠 주세요.우리가 서로의 현실을 조금씩 이해하고,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큰 위로가 될 수 있도록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