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하는 여행 '절망편' ― 포포포 매거진 '육아 공감'
'아이랑 여행하면 분명 행복할 줄 알았는데...왜 이렇게 힘든 거죠? 😂😂😂' 포포포 매거진이 들려주는 이번 이야기는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의 현실을 솔직하게 담았어요.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 절망편! 포기의 여행 ― 에스텔의 프라하 육아일기 이번 여행은 망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십분도 채 못 걷고 얼음물을 사러 슈퍼에 들어가며 생각했다. 아이들이랑 이 날씨에 관광지라니 우린 정말 미쳤어. 베네치아는 소문대로 정말 아름다운 도시였고, 곳곳의 아름다운 골목과 물길을 잇는 다리까지 상상 속 그대로였다. 아니 더 아름다웠다. 유럽을 돌아볼 만큼 돌아봤지만 베네치아 만큼 아름답고 특별한 도시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미쳤다. 여름 이탈리아는 한국만큼 덥고, 정말이지 녹아내릴 것만 같았는데, 우둘투둘한 돌길과 계단과 다리 덕분에 유아차를 끌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점점 익어가고 버스도, 택시도 없고 수상버스, 수상택시만 있는 곳에서 오로지 “걷는다”라는 선택지밖에 없었다. 오전을 아이들 투정을 받아주고 몇걸음 떼고, 젤라또를 사 먹다가 다 보내고, 점심에서야 겨우 레스토랑에 들어갈 수 있었다. 파스타와 샐러드 몇 개를 시키고 순식간에 해치웠다. 더워서 입맛을 잃었지만 여기서 먹지 않으면 오후 일정을 소화하지 못할 것 같았다. 아이들은 고작 한여름 몇시간에 점심을 먹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도시의 여행은 정말이지 고단하다. 웨이터가 가족들이 자는 거냐고 눈짓했다. 그렇다고 미안하다고 눈빛을 보내고 미안한 마음에 커피와 디저트를 시켰다. 이 여행을 무사히 끝낼 수 있을까 싶었다. 베네치아에 오기 전까지는 좋았다. 비록 밤새 8시간을 운전했지만 말이다. 아이들이 잠들 즈음 밤 10시에 출발해 남편과 교대로 운전했다. 그렇게 에너지음료를 먹고 다음 날 아침에 도착했다. 이렇게 하면 엄마·아빠의 체력은 갈려 나가지만 무엇보다 시간을 아낄 수 있고, 아이들의 고생도 좀 덜 수 있다. 트렁크에 집을 가득 채워 넣고, 아이들은 잠옷을 입히고 결연한 마음으로 그렇게 떠난 여행이었다. 여름휴가는 1년 중에 가장 길게 갈 수 있는 휴가다. 9일간의 여행 중 절반은 희망적이었고, 절반은 절망적이었다. 밤새워 운전해 도착한 곳은 슬로베니아의 ‘블레드 호수’였다. 호수를 산책하고 아침을 먹고, 오후에 ‘포스토이나 동굴’을 관광했다. 아이들과 봤던 <바다 탐험대 옥토넛: 해저 동굴 대탈출>에서 봤던 카르스트 지형 동굴이었다. 시원한 동굴에서 열차를 타고 동굴 깊숙한 곳으로 이동했고, 음성 안내를 들으면서 500만년된 거대한 종유석을 아이들과 구경했다. 어찌나 신기하던지 여러 모양의 종유석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둘째는 절대 걷지 않지만 동굴 안에서는 안아달란 말 없이 손을 잡고 걸었다. 그리고 슬로베니아의 조용한 바닷가 동네 ‘이졸라’에서 이틀을 보냈다. 늦잠도 자고 낮잠도 자면서 여독을 풀었다. 숙소에서 5분 걸어가면 아름다운 해변이 있고 아이들은 거기서 하루 종일 놀고, 낮잠을 자다 또 일어나서 바다에 뛰어들었다. 여기까지. 여기까지는 정말 좋았다. 베네치아에서 단 몇 시간 만에 정신이 아득했다. 남편과 아이들을 깨워 계산하고 나오면서 그늘진 벤치에 잠이 덜 깬 그들은 앉혀두고 ‘리알토 다리’까지 혼자 걸었다. 유아차를 밀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고, 계단을 넘어야 했다. 미리 사전 답사를 하고선 남편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지금부터는 정말 웃음기 사라질 거라고 말이다. 정말 단 한 걸음도 걷지 않는 둘째 때문에 우리는 유아차를 읏쌰! 하고 가마꾼처럼 유아차를 들고 옮겼다. 처음에는 “상감마마 납시오!” 하고 장난을 쳤지만, 이후엔 그마저도 하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며 유아차와 둘째를 통채로 들어 옮겼다. 길에 가득한 사람들 덕에 유럽에서 이런 인구밀도를 겪어보다니 게다가 푹푹 찌는 듯한 날씨에 모두가 지쳐갔다. 예쁜 도시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고도 싶었지만 쉽지 않았고, 더는 가족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겨우겨우 산마르코 광장까지 걸어가서 수상버스를 타고 베네치아 본섬을 벗어났다. 베네치아를 반도 못 보고 후퇴하면서 눈물이 찔끔 났다. 아이들과의 여행이 쉽지 않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여행은 한정 되어있고, 이왕 여행하러 왔다면 제대로 보고 가고 싶은데, 매번 여행지의 반도 못 보고 돌아서야 하기 때문이다. 언제 다시 오겠어. 간절한 마음으로 여행을 다니던 젊을 때와 다르게 아이들과 여행은 욕심을 낼수록 모두가 힘들어지니, 포기를 알아야 한다. 어쨌든 모두가 피로와 더위에 지친 상태로 숙소로 돌아왔다. 육아와 여행에는 변수가 있고, 거기서 욕심을 내면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없다. 그걸 아는데도 돌아서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과 유럽 여행 2년 차로서, 아이들과 유럽 여행을 할 때 포기해야 할 세 가지가 있다. 1. 여행 명소 포기 : 아이들은 명소 같은 거 관심 없다. 놀이터 가고 싶다. 2. 맛집 포기 : 아이들은 맛집 같은 거 관심 없다. 한식 먹고 싶다. 3. 인생샷 포기 : 아이들은 인생샷 같은 거 귀찮기만 하다. 젤라또 먹고 싶다. 그렇다 저 세 개를 포기하면 그나마 행복한 여행이 된다. 그럼 도대체 왜 여행을 가냐고? 소문난 곳은 어떻게든 가보고 싶어서? 유럽 살면서 가볼 수 있는 데는 가봐야 하지 않겠나. 사실 아이들과는 기동력이 떨어지고, 유럽은 어딜 가든 돌길을 걷고, 돌계단을 넘어야 해 유아차도 쉽지 않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서야 한다. 내가 여길 언제 다시 오나 싶다. 아마 아이들이 다 키워 독립시켜도 다시 오지 못할 것 같으니 포기가 쉽지 않다. 하루 많으면 두 군데 정도를 갈 수 있고, 그 이상은 대부분 불가능하다. 그런데 날씨가 따라주지 않으면 그날은 완전히 망한 날이 된다. 그래서 긴 여행은 참 힘들다. 아이들의 밥과 컨디션을 챙겨가며 여행하는 것은 몇번을 해도 적응이 잘 안되는 것 같다. 그렇게 고생해서 여행을 다녀왔는데 아이들은 관광지 앞 놀이터에서 모래놀이했던 것이 제일 재밌었다고 말할 땐 약간 기운도 빠지고 웃기기도 하다. 그래서 아이들과의 여행에는 엄마·아빠의 나사를 몇 개 뽑아야 한다. 각이 살아 있으면 포기가 쉽지 않고, 제정신이 아니어야 여행을 망치지 않고 여행을 마칠 수 있다. 베네치아 후퇴 사건으로 아쉬운 마음에 저녁을 간단히 먹고 홀로 길을 나섰다. 동네 산책이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을 내려놓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어스름하게 해 질 녘에 주택가를 걸었다. 집마다 있는 발코니의 열린 문에서 새어 나오는 식기 달그락거리는 소리, 가족끼리 파리 월드컵을 시청하는지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조용한 곳에서 귀를 기울이면 사람 사는 소리가 들린다. 집마다 있는 발코니와 식물들. 활짝 열린 베란다 문에서 새어 나오는 생활 소음들. 여기 사는 사람들의 사는 모습. 그렇게 대단한 여행이 아니라도, 내가 다른 곳에 사는 듯한 새로움을 준다면 그게 여행이지. 남들 하는 것들 다하지 않아도 된다. 스스로 다독였다. 석가모니는 이런 말을 했다. 살면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원하는 어떤 것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원하는 그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포기할 줄 모르는 마음이 있다. 내가 아이 엄마라는 핸디캡을 잊고 싶은 마음. 나는 여전히 아이유가 뮤직비디오 촬영했다는 베네치아 무라노섬도 가고 싶고, 베네치아 곳곳의 다리에 기대서 인생샷을 찍고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도 바꾸고 싶다. 원하는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지는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 여행지, 돌로미테로 이동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구불구불 능선을 타고 주차하고 짧은 트래킹을 하거나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다. 제대로 갖춰 입고 트래킹하고 하이킹하고 산악자전거를 타는 이들을 보면서 청춘을 청춘으로 쓸 수 있어 참 부럽다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는 짧은 트래킹도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고 몇걸음 걷고 쉬거나, 반의반도 돌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아이들의 불평과 안아달란 말에 지칠대로 지친 나는 베네치아와 돌로미테의 여파로 피로와 짜증이 몰려오기 시작했는데, 이번 여행의 대장인 남편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진짜 이게 뭐야. 여기 와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케이블카 타는거밖에 없잖아... 스노클링 하러 가자고 해놓고 수족관 간 느낌이야. 이 좋은 자연 속에서 짧은 외마디 감탄밖에 못 하고 쏠랑 내려오는 게 무슨 여행이야. 관광이지. 나는 이런 여행 싫어. 근데 애들이랑 이런 여행밖에 못 하는 게 답답해! 숙소는 왜 이렇게 멀어 하루 왕복 두 시간은 구불구불 산길 건너느라 멀미가 난다고. 그리고 한식 먹고 싶어!” 남편은 웃음이 터졌고, 숙소를 멀리 잡은 것도 미안하고, 내일은 다른 걸 해보자며 나를 달랬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 우리 애들 다 키우고, 그때 다시 가볼까? 우리 한번 와봤으니까 할 수 있잖아. 그때 실컷 보자” 머릿속에 나이가 들어 둘이 자유여행을 하면서 다니는 순간들이 그려졌다. 그래, 한번 와본 곳이니 더 마음먹기도 쉽겠지. 그때를 기약하며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으로도 만족하자. 그래도 아마 우린 여기 다시 못 올 거야. 현실은 지리산일 거라고! 그렇다. 여행도 때가 있는 것 같다. 자연 속에서 그리고 다양하고 새로운 사람들에 폭 파묻혀 세상이 흔들리는 경험을 해보는 여행은 때가 있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트래킹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이들의 멱살을 끌고 다니면서 이 고생을 자처하는 우리에 대한 허망함이 들었다. 여행도 다 때가 있는 것을. 그때와 기회가 맞춰지는 천운은 없었지만, 갓난아기를 안고서 트래킹을 하는 사람들과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며 묘한 위로를 받았다. 이 시기를 빗겨난 우리는 아마 더 많은걸 봤을지도 모르지. 그런데도 우리의 여행을 도전해 볼 이유가 있다고, 아이들과 이 모든 고행이 헛된 일은 아닐 거라는 정신 승리와 함께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어디든 떠날 수 있다고 말이다. 나의 바람대로 남편은 마지막 날에 전기자전거를 대여해주었다. 5시간에 48만원이 증발했다. 이거라도 안하면 우린 여기에 온 이유가 없을 것만 같았다. 아기의자를 빌려 설치하고, 남편 뒤에 둘째를 태웠다. 그리고 내 자전거와 첫째 자전거를 끌고 돌로미테 ‘알펜 시우스’를 향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알프스의 고원을 달리고 또 달렸다. 힘에 부치면 전기 파워를 올려 페달을 밟았고 자동차보다 느리게 풍경을 느끼고 바람을 맞았다. 첫째도 광활한 고원을 달리며 느리면서 즐거운 자유로움을 느꼈을까? 사람들은 가족끼리 자전거를 타고 있는 우리에게 길을 내어 주었고, 길 위에서 유아차를 타는 아기와 부모,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았다. 뭐든 적당할 때는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 할 수 있을 때 뭐라도 해보는 때가 가장 좋은 때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가성비가 떨어지는 이 바보 같은 여행을 지속해도 좋을 것 같다. > 똑디분들은 아이와의 여행에서 어떤 순간이 가장 힘들었나요? 떠오르는 좌충우돌 경험담이나 마음에 남은 에피소드를 댓글로 들려주세요.짜증 났던 에피소드도, 포기의 순간도,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썰도 다 좋아요.서로의 여행 썰을 들으면서 같이 웃고, 공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