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 학부모 관계란 ― 포포포 매거진 '육아 공감'
육아만큼이나 어려운 게 학부모 관계,아이 일만 챙기기도 벅찬데, 엄마들 사이 눈치 게임까지. 포포포 매거진이 들려주는 이번 이야기는'이로운 학부모 관계'를 만들기 위한 슬기로운 거리 두기 이야기를 전해요. 이로운 학부모 관계란 무엇일까? ― 캥거루의 뛰다가 생각했어 유치원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관계를 통틀어 가장 어려운 관계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학부모 관계라 답하겠다. 방학이 끝나고 새학기가 시작될 즈음 끝나가는 방학의 끝을 부여잡고 구차하게 매달리고 싶은 마음 역시 개학과 함께 새로이 시작될 학부모 관계에 대한 부담에서 비롯되곤 한다. 아이보다 내가 더 방학을 좋아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갓 퇴사한 후 새로이 접한 유치원 학부모 세계는 예상외로 따뜻했고,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매우 편안했다. 퇴사 직전 나는 아이 친구 엄마들을 만나 무슨 주제로 대화를 해야 할지, 잘 지낼 수 있을지 막연히 두렵기만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또 하나의 가족’이라 부를 정도로 좋은 인연을 만나 지금까지도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모든 학부모 관계가 그러했던 것은 아니지만, 가까운 학부모들과는 마치 옛 동창을 만난 것처럼 허물없이 돌봄의 기쁨과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편안한 관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내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학부모 관계가 어려운 이유는 아이의 관계와 나의 관계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관계의 특수성은 아이의 관계와 나의 관계 양쪽이 모두 양호해야만 유지될 수 있는 관계라는 점에 있다. 즉 어느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틀어지기 쉬운 관계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모 간 교육관이나 가치관에 공통점이 있다면 훨씬 낫다. 정글 같은 초등학교 생활을 이제 막 시작한 아이의 모든 관계가 매번 초록불일 수는 없지만 생각이 잘 맞는 학부모와는 아이끼리 생기는 사소한 다툼이나 분쟁은 알아서 해결할 수 있도록 시간과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반면 그 반대의 경우라면 해결이 매우 까다롭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살아가며 쉽게 만나기 어려울 것 같은 마음이 뒤틀린 한 학부모를 만나게 되었다. 일명 ‘센 사람’이 가득한 회사에서 사회 초년생 생활을 시작한지라 어지간한 인간 군상에는 내성이 생겼다고 생각해왔는데,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었다. 교내에 그분으로 인한 ‘피해자 모임’을 한 반은 꾸릴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을 다친 학부모가 많다. 그러나 그의 행보를 막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여차하면 아이에게도 해를 끼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가능한 감정을 절제한 예의 바르고 공식적인 문체로 그 학부모와의 관계를 끊어낸 후 한동안 아주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학부모를 만나지 않았다. 흔치 않은 강렬한 경험을 한 것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모든 학부모 관계에 염증을 느낄 만큼 마음을 다쳤다. 다행히 아이들 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탓에 나만 아프고 말면 될 일이라는 점에 간신히 안도할 따름이었다. 그 이후 나는 나와 마음이 잘 맞는 학부모와 주로 만나되, 아이와 밀접하게 연관된 새로운 학부모 관계에는 더욱더 신중을 기하게 되었다. 나름의 방어태세를 갖춘 것이다. 안전 운전의 기본은 방어 운전이라 했던가. 슬기로운 학부모 생활에도 방어 운전이 필요하다.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한 좋든 싫든 학부모 관계는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들 하지만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즐길지는 여전히 의사결정이 필요한 영역이다. 또한 서로에게 이로운 학부모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다 주체적으로 그 방식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어영부영하다가는 친밀한 관계와 비즈니스 관계 그 사이 어디쯤에 위치한 학부모 관계에서 다치고 헤매기 십상이다. 우선 나는 아이의 관계와 나의 관계를 분리했다. 이것은 어쩌면 이제 나의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칼로 무 자르듯 모든 관계가 칼같이 정리될 리 만무하다. 하지만 아이의 관계는 가능한 아이 몫으로 남겨두고 나는 나와 결이 잘 맞는 학부모와 평화로운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아이들과 학부모의 감정선이 뒤엉킨 관계에서 탈출해 상대와 나의 감정선만 고려하면 되는 관계로 진입한 것이다. 그제야 긴장된 어깨가 느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몇 년 전부터 혼자만의 시간을 늘렸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기도 했지만 여유 시간이 있을 때에도 가능한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려 노력했다. 건강한 관계 맺음은 결국 내 몸과 마음의 건강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얽히고설킨 관계에 매어 있을 땐 관계의 날카로운 실이 나를 파고드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관계로부터 독립을 해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관계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이야말로 이 시대의 불가능한 판타지라고 할 수 있지만 하루의 일부를 나 자신과 평화롭게 즐기는 일은 누구나,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아직 학부모로서 살아갈 시간이 한참 더 남았다. 사실은 호불호가 강하고 까탈스럽지만 겉으로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사는 나는 팔딱팔딱 잘도 뛰는 캥거루를 필명으로 삼고서도 늘상 일주일에 한 번만 땅에 내려온다는 나무늘보의 삶을 꿈꾼다. 피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걸핏하면 학부모 관계가 버거워 학부모 노릇 못 해먹겠다고 외쳐온 나의 마지막 생존전략은 바로 아주 느리게 판단하고, 느리게 관계를 맺는 것이다. 10초 간의 인상이나 몇 가지 단서로 이렇다 저렇다 학부모를 판단하기보다는 최대한 판단을 보류하려 노력한다. 훅 치고 들어오는 학부모의 템포로부터 한 발짝 뒤로 물러서 나의 호흡을 먼저 가다듬을 수 있어야 서로에게 안전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과연 이로운 학부모 관계란 무엇일까? 해답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답은 서로가 서로를 ‘아이의 교육기관에서 만난 상대 학생의 부모’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한,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관계다. 우선 나부터 상대에게 이로운 학부모가 되어주어야지. 남은 N 년의 학부모 생활이 무탈하길 빌며 오늘도 나의 잡생각은 계속된다. > 똑디분들도 속으로만 삼켰던 학부모 스트레스, 있으셨죠?진땀 흘렸던 순간부터 어떻게 풀어냈는지까지, 댓글로 경험을 나눠주세요.여기 모인 이야기들이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될 거예요🙌